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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목 : 그림 그리는 의사, 수도승을 닮은 그녀-최미령(2)

며칠 후 퇴근 시간에 맞춰 아파트로 찾아갔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 집에 맡겨놨던 딸, 혜원이를 데리고 오는 중이었다. 집에 오자 그녀는 딸애의 겨울 방학 계획표를 꼼꼼히 챙기는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의사부부의 집치고는 생각 외로 소탈했다. 창문 너머로 대치동 정경과 산이 보여 시원했고 그녀의 작업실은 거실 한 쪽이었다. 가난한 의사부부의 집이라고 웃음삼아 얘기며 5년째 전세 살고 있다는 얘기, 치과에서 돈 버는 것 보다 부동산이 더 많이 오르더라는 얘기 중 ‘남편이나 나나 돈 모으는 것에 재주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 주택청약도 뭔지 잘 모르다가 언니가 하라고 닥달해서 두 번인가 했는데 잘 안되고 복잡하다고.


“집값은 계속 오르고 못 사겠더라고요. 사는 것도 발품 팔아야하는 건데 그럴 시간도 없어서 못 사고 있어요.”


그녀와의 인터뷰는 딸 혜원이의 쫑알쫑알 대는 질문과 함께 진행됐다. 혜원이는 전시장에서는 말이 없더니 집에서는 말을 잘하는 수다쟁이였다. 대담 와중에도 한쪽에서 계속되는 아이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해주랴 대담에 응하랴 바쁜 그녀.


엄마를 닮았는지 그림책에 그림이 참 솔직했고 그 집의 일상생활이 한 장 그림 속에 녹아들어있었다. ‘엄마가 수요일 수업인데 그림을 다 못 그려서 화요일까지 그린 적이 있어요’ 혜원이의 상식으로는 숙제는 미리 미리 끝내 놔야하는 것인 모양이다. 전날 숙제를 끝내는 것이 큰  일이었던 듯하다.


그녀는 전시 때마다 아이들을 그려서 집에 걸려있을 줄 알았는데 거실에는 아이들 그림이 없어 이유를 들어봤다.


“애들 그린 그림을 붙여놨었는데 처음에는 애들이 좋아했어요. 그런데 큰애가 사춘기가 돼서인지 웃옷을 벗은 자기 모습을 그린 그림을 친구들이 와서 보면 챙피하다고 자꾸 얘기해서 떼놓고...자기 스스로는 부끄럽게 생각 안했는데 딴 애들이 얘기하니까 창피했나 봐요.”


딸애 그린 그림을 붙여놨는데 아들한테 미안해서 떼어내고 이래저래 아이들 그림이 없는 이유였다. 아들한테는 인기가 없다는 얘기를 하며 웃는 그녀지만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엿보였다.


 

작가나 예술가 중에 의사 출신이 적지 않다는 걸 떠올리며 의사 중에서도 그림 하는 사람들 있나 궁금하다는 질문에 옛날보다는 많이 없다고 한다. 회화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조소, 도자기, 사진,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치과의사 문화제 때 그동안 그렸던 그림을 몇 점 출품도 했다. 전문직 의사로서 그림 그리는 데 애로사항이 있는지 물어봤다.


“의대는 시간이 없으니까 전체 대학차원 써클 활동을 못해요. 의대 내 써클만 20여개 정도 되죠. 미술반도 있었는데 각 학년에 한 명에서 두 명 정도 있었나? 그마저도 지금은 거의 없어진 듯해요.

의사라 그러면 다르게 보는데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보는 게 불편한 점이 있어요.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시선이 있는데 그런데 구애받지 않고 내 형편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전문직이란 게 별다른가요? 무슨 일을 해도 다 전문직이죠. 나라에서 면허를 줘서 전문직이지. 의사라고 특별하게 보지 말고 다른 직장인들과 똑같다고 봤으면 해요. 수퍼마켓 주인과 똑같이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니까 그렇거니 하고 듣지만 그런 얘기 들으면 불편하죠.

친구들 사는 것도 똑같아요. 대학졸업하고 대기업 들어간 친구들과 초봉은 좀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나이 마흔 되니까 봉급 비교해보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아요. 그만둔 여자친구들이 많긴 하지만... 의사들이 있는 척 하나 봐요. 일하면서 애환도 있긴 하지만...의사들이 하는 일을 그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 그려본 적은 없어요.

때로는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능력이 안돼서 자료 마련이 힘들더군요. 일하는 여성이 많이 힘들잖아요. 술그타에도 결혼해서 애 낳고 나서 그만둔 사람이 많거든요. 열심히 하던 사람들도 거의 애 낳고 그만두게 됐는데 너무 이해가 돼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봐주면 가능할까. 저도 회비포함 그림 그리러 가려면 사실은 20만원 정도 드는 것 같아요. 남편이 봐 주다가 수요일에 일이 생겨 못 봐주면 사람을 써야하거든요. 애들 아주 어렸을 때는 아줌마를 불러서 괜찮았는데 그래도 애들한테 빚진 마음이 계속 있어요. 여자들은 애들 키우면서 그림하기가 참 힘들어요. 직장까지 다니면 이중고 삼중고가 되죠.”


미술시간 홈페이지 ‘그림감상’ 코너에 올리는 그녀의 글을 보면 혹, 감상이나 평론 쪽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 그녀는 그림에 대한 책을 많이 본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게 되니까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보다 글 쓰는 게 더 쉽고 좋다는 그녀.


“글도 쓰다보니까 재밌어서 그림감상만 전문적으로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인터넷 입문할 때 치과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성경말씀과 미술에 관한 글을 썼어요. 박물관 기행이나 명화 감상 글들을 한 단락정도로 쉽고 간단하게 썼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미술시간 블러그 하면서 글을 길게 써봤어요. 점점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죠.

몰랐는데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점점 더 독자가 의식이 돼서 못 쓰겠더라고요. 중학교 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한때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꿈을 가졌던 것 같은데 책 쓰는 사람이 멋있게 보였어요. 적성검사에서 문과이과가 명쾌하게 안 나왔어요. 선생님이 이과 가라고 해서 이과에 갔던 거죠. 수학선생님이 뒷집에 살았는데 집에 와서 이과에 가면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여자에게 길이 많으니까 좋다고 이과를 추천하셨어요. 문과 쪽은 두루뭉술하잖아요. 선생님이 현실적인 얘기를 해줬던 거지요. 수학도 잘하고 하니까 이과가라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답인데 국어는 답이 아니라고 하니 어려웠어요. 읽는 사람 맘대로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도 약간은 그렇게 생각해요.”

 


그림 그리면서 바라는 게 있냐는 질문에 의외로 소탈한 대답이 나왔다.


“별로 없어요. 그림으로 뭘 하겠다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우연히 찾은 미술시간인데 그냥 감사할 따름이죠. 미술시간이 비전을 갖고 나가는 모습이 좋고 내가 혹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못하고. 그런 입장이에요.”


얘기가 무르익자 4회 만만한 미술전을 마치고나서 오래했다 싶어서 조금 쉬고 싶었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속마음을 조금 내비친다. 그런 마음도 들고 주변에서 그림을 달라는 사람들도 많아서 당분간 정물, 꽃, 과일 등 선물용 그림을 하고 있다고. 언니 오빠들에게 작은 그림들을 선물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쉬어감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제가 성격이 수도승 타입이죠. 게으르기도 하고 일을 안 벌이는 스타일이에요. 심심하게 혼자 있어도 잘 지내고 그걸 좋아해요. 일을 벌일 수도 있는 여건인데 성격 탓에 그나마 대외활동으로 미술만 하고 있는 듯해요. 어쩌면 재미없게 살았을 사람인데 그림을 한다는 것 때문에 특별한 인생을 사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이 자기 본능에 충실해서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 그걸 찾아서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자신감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림은 제게 중요해요.

미술 시작한 시기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미술과 분리시킬 수 없죠. 결혼은 여자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랬어요. 결혼하고 처음에는 힘들었지요. 개업하기 전까지는 그냥 쉬었어요. 치과일 하니까 숨통도 트이고 또 그림을 하니 가정에서, 직장 일에서 벗어나 해방감도 느꼈어요. 그게 그림과의 인연을 맺은 보이지 않는 동기 같기도 해요.

하지만 직장생활하면서 그림 그린다는 것이  어디 한군데가 어긋나면 힘들어지죠. 가정, 직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그림, 이중에 뭔가가 비상사태가 생기면 다른 뭔가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되죠.

미술시간 그림 방법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계속 가는 스타일이잖아요. 너무 오래 달리기를 해 온 듯해요. 저는 워낙 무슨 일이든 쉬엄쉬엄해요. 게으른 사람이죠. 그림이 싫어져서 쉬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기간을 갖고 싶다는 거죠. 쉬엄쉬엄 가고 싶은 마음. 한번 하겠다고 했으니까 계속 하는데 여유 있게 하고 싶다는 거죠.”


 

쉬엄쉬엄, 게으름, 수도승 같다는 말들은 필자도 친숙한 단어들이라 웬만큼 이해가 되는 말이다. 어느 때가 되면 필자도 그런 시간을 가져야지 생각하고 가까운 미래로 유보시켜놓고 있는 상태인데 그녀는 조금 일찍 여유란 놈을 찾을 건가 보다. 인생의 꿈이 뭐냐는 생뚱 맞는 질문을 던져봤다.

 


“살다 죽는 거죠. 행복하게 살면 되죠. 저는 수도승타입이에요. 사람들이 그런 줄 몰라요. 얼마 전 교회에서 성격테스트를 했는데 수도자타입으로 나왔어요. 우리 식구들이 모두 그래요. 다 ‘도’ 닦으면 딱 맞아요. 원대한 꿈은 없어요.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애들 잘 키우고...

지금처럼 이렇게 그림 그리면서 살고 싶어요. 평생 그림 그리고 또 전시도 보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 감상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보기도 했고. 그림 그리기 전에는 전시장에도 많이 안 갔고 가서 봐도 이게 뭐냐 싶은 생각도 들고...

새로운 가요가 나와도 좋다 싫다 말할 수 있는데 보통 그림은 그런 말도 못하잖아요. 지금은 그 정도는 해요. 막연하지만... 이미지로 좋다 싫다가 아니고 ‘이해할게 있으면 이해한다.’하고 ‘이해할 게 없으면 이해할 게 없네.’ 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림하면서 제일 잊혀지지 않고 기뻤던 일은 첫 번째 전시회 했을 때라고, 본인이 너무 대견했다고 그녀가 말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림을 하다보면 현실의 자기와 상관없이 너무 큰 욕심을 내거나 무리를 하기도 하는데 수도승 같다는 그녀의 말 때문일까. 큰 욕심이나 사심이 없이 그림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림과 수도의 길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최미령 회원을 탐방한 지 자못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필자의 게으름으로 이제 올리게 됐습니다. 수도승 같은 마음으로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박선정 
datdawa@hanmail.net
http://art.misulban.com/park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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