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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목 : 진정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진정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전혀 그럴 뜻은 없는데 팔불출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아이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겠다.

초등학교 1학년 된 아이가 있다.

이번 주 토요일은 ‘놀토’다. 노는 토요일 이란 말을 줄여서 ‘놀토’라고 한다.


“한별아 이번 주 토요일은 학교 안 가는데 뭐 하고 놀래?”

라고 물었다.

“어! 학교 안가네. 아! 자유다!”

라고 외친다.


 

아이교육에 있어서만큼 주관을 지키려고 한다.

이게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는 고수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학교 숙제하고 무조건 놀기가 기본이다.

학원 보내지 않고 학습지 하지 않기, 여행 자주 다니기, 컴퓨터나 텔레비전 1시간 이상하지 않기, 책 많이 읽기, 그림과 만들기 마음껏 하기, 이 정도면 거의 아이를 놀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최근 들어 방과 후 특기적성에 과학이나 로봇 만들기 정도에 주 1회 수업을 받고 있는 정도다. 그리고 보육실에서 놀다가 내가 귀가할 때 데리고 집으로 간다.

요즘 부모들이 보통 극성인가! 이해 안 갈지 모르겠지만 학교 들어 갈 때 한글도 잘 모르고 들어갔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1학기에는 받아쓰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엄마, 받아쓰기 10점 맞았다~!”

고 자랑하는 아이다.

이 상황에서 절대 기를 죽이면 안 된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2학기에는 시험도 치더라.

시험 준비를 한다고 그런지 놀이터에는 평소보다 더 친구들이 없다. 부모가 친구가 되고 언니 동생이 되며 더 많이 놀아 줘야 한다.

시험 치는 날에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이가 오늘은 진짜시험을 쳤다고 한다. 너무 무심한 엄마가 아닌가. 조금 자책했다. 점수가 내심 궁금했다. 수학, 국어 70점, 80점을 받았다. 당장 받아쓰는 일은 잘 못하지만 전반적인 이해력은 있다는 뜻으로 판단됐다.

어떤 엄마가 그런다. 학습지 시키고, 학원 보내는 게 시험 잘 보게 하려고 보낸다고.

비참한 현실이다.

나는 아이를 학원시간에 맞춰 가고 오고 해 본적이 거의 없다. 사각 틀에 가둬서 키우지 않아도 50점 이상 받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중요한 건 학원을 보내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선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학원을 시간 맞춰서 잘 다니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줘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초등 6년만 보내고 끝내는 교육이라면 모를까, 좋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운 게 아니라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이는 건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일까.

남들이 하니까 뒤쳐질 것 같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건 아닌가.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하는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하지 않는가. 불안에 떨지 말고 주관을 가져야 한다. 혹시 나도 돈이 많다면 황제교육을 시킬 것 같다. 최고 좋은 정보만 제공받는 다면 부족한 사람도 똘똘해지지 않겠는가. 이건 가능한 현실이 아니니 접어두자.

불안한 이유가 뭘까.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바란다.

그럴수록 내 자신의 존재를 드높이는데 투자하고 더불어 아이도 가족도 행복해지리라 확신한다.

인간은 독립된 존재다. 아이도 남편도 형제도 내 것이라고는 없다.

소유할 수 없다. 소유와 집착은 오히려 제대로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입장에서 그림만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회원 중 한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그림 그리는 날 뒤풀이 하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고 했단다. 부인은 일주일에 한번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데 그것조차 못하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소유나 집착이 아니냐고 반문했단다. 오기가 생겨 더 늦게 들어가고 싶어진다고.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나의 존재를 아름답게 드러내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전문적인 깊이가 있을수록 더욱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림이 나의 존재를 아름답게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경배의 대상이었던 예술 활동을 일반사람들이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행위인지 알기에 하고 있다.

우선, 나의 행복을 위해서다.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활동하고 싶다.

진정 행복을 바란다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틀에 가두는 건 내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내가 행복이 뭔지, 재미가 뭔지 알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면 아이도 행복해 질수 가 없다. 


사회적 지위로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은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갈수록 그 한계는 단축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고리타분한 조직에서야 정년퇴임이 보장되겠지만 요즘은 웬만한 직장에서도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지는 오래다. 30, 40대에 최대한 창의적인 생각들을 쓸 만큼 쓰고 나면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란다. 퇴물이 된다. 또 다른 총명한 젊은 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부장, 이사 정도 하고 그만 두고 ‘어느 회사 간부로 있었다.’는 사회적 지위로 몇 십 년을 살아 갈 수 없지 않는가.


어떤 장관을 지낸 사람이 있었다.

언제 적 장관이었냐고 하니 20년 전 6개월 지낸 장관이라고 한다.

20년 전에는 장관이었지만 지금은 장관이 아니지 않는가. 사회적 지위는 지위를 그만두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지위를 박탈당하는 순간 그 상실감은 말도 못하게 괴롭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에 돈과 명예와 지위를 누렸던 사람들이 자살을 통해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  하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나 돈이나 명예보다 내 존재를 더 드러낼 수 있는 게 있단 말인가.

창조적 예술행위는 정년이 없다. 고갈되지도 않는다. 끝이 없다. 어려운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두지 않고 하면 뭔가가 된다. 예술행위를 하는 그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나를 이렇게 모르고 있을 줄이야 한심할 정도다.)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소통을 하지 못하면 다른 관계와의 소통은 더욱 어렵다.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소통은 그림 그리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다면 감추고 싶어 하는 것까지도 드러내야 진정한 나와 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고통스럽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오직 공부, 모범생이면 출세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학교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최근 한 학교 총장이 신입생을 뽑는데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창의력이 높은 학생을 입학시키겠다고 한다. 모 증권회장도 신입사원을 입사시키는데 조건을 자격증만 많은 신입사원보다 창의력이 높은 사원이 회사를 위해 필요한 인재라고 밝혔다.

여전히 학벌을 중시 여기긴 하지만 시대흐름은 창의적인 능력을 중심으로 가고 있다.

창의적인 능력을 키우는 교육의 핵심은 예술교육이다. 시간 맞춰 학원 잘 다니고, 학습지 진도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미래에 우리 아이가 좋은 인재가 되길 바란다면 당장 우리의 아이들을 학원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넓게는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삶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고자하는 욕구는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삶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된다면 욕망은 만족이 아니라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욕망은 욕망을 먹고 산다.

서점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베스트셀러 처세술에 나를 맡기지 말자.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만들어 진다면 그것을 통해 많은 부분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고백성사


대체로 현재 미술시간에 입문하는 회원들은 철저한 자기검증을 거쳐서 온다.

그래야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의지대로 그림을 그린다. 그게 현명한 일이다. 가끔 지인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떤 곳인지, 회원들의 실력은 어떤지 알아보고 온다. 설마 강사가 잘 생겨서 오겠는가. 옛날에는 친구 따라 압구정동에 많이 갔다. 그래서 많이 망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미대를 나오지 않은 저에게 왜 그림을 배우러 오십니까? 좋은 대학 나오고 실력 좋고 유명한 화가들이 지역에도 많이 있습니다. 혹시 잘못 알고 오신 거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셔서 곰곰이 잘 생각 해 보고 다시 결정하세요.”


수업 시간에 회원들에게 했던 질문이다.

아니 회원들을 향한 질문이라기보다 나에게 되물어 본 내용이기도 하다.

자신과 일반 대중들에게 고백성사를 했다.

하느님보다 나 자신과 대중들을 믿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여유가 생기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수준 낮은 학교교육을 추종하게 될까 두려워 회원들에게 고백성사를 했다.

기존 학교교육의 영향을 덜 받을수록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이 흔들릴까봐.

일반대중들을 고귀하게 만드는 지금의 가치 있는 행위를 행여나 버리게 될까봐.

일반사람들에게서 높은 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의 신념이 흔들릴까봐.

하느님보다 더 고귀한 존재인 자신과 일반 사람들 앞에서 고백성사를 했다.

신미란 
smrcham@hanmail.net
http://art.misulban.com/smrc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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