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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목 : 민화의 핵심은 본그림이다.

1960년대, (중략)한 미국인이 인사동 종이공장에서 재활용 종이로 만들기 위해 넝마주의가 주워온 폐지 속에서 민화 500여점을 건졌다.

이들 민화는 현재 시애틀미술관, 포클랜드미술관 등 미국 서부 지역의 박물관에 대여하여 전시되고 있다.(중략)

 

미국인이 아슬아슬하게 건지 민화 가운데는 여덟 점의 민화 책거리 초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초본에는 ‘壬申十月九日 模于公洞’이라고 제작 연대와 제작지가 밝혀져 무엇보다 소중하다.

‘임신년’은 제작연대로 보아 1872년이거나 1932년으로 추정된다.

이 초본처럼 서가가 없는 책거리 그림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다.

‘공동’은 서울의 소공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 초본은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제작한 책거리라고 볼 수 있다. (중략)

 

더구나 이 초본에는 색채와 기법의 명칭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민화 채색과 책거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세 첩의 초본을 보면, 주(朱). 청(靑). 녹(綠). 진묵(眞墨). 황(黃). 분(粉). 진분(眞粉). 백(白). 지(旨). 하(荷). 육(肉). 극(棘). 회(灰)의 열세가지 색 이름이 적혀있다. 이 가운데 주. 청. 녹. 진묵. 황. 분. 백은 오방색인 정색이고 나머지 지. 하. 육. 극. 회는 간색이다. 민화 책거리에 오방색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간색도 다섯 가지나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중략)

 

이 초본에는 기법을 나타내는 용어도 보인다.

주휘(朱揮). 지휘(旨揮)의 휘(揮),

진심(眞深). 지심(指深)의 심(深),

청채(靑彩). 주채(朱彩)의 채(彩),

분본(粉本). 회본(恢本). 하본(荷本). 주본(朱本)의 본(本),

분문(粉文). 황문(黃文)의 문(文),

수반수문(水反水文). 진반진문(眞反眞文)의 반문(反文) 등이 그러한 것이다.

휘는 선염(渲染), 즉 바림(색을 점차 흐리게 하는 기법)이고,

심은 짙게 음영을 넣는 것이며,

채는 채색, 본은 바탕, 문은 문양을 베푸는 것이다.

수반수문은 나무 필통 윗면의 물결무늬를 그리는 방식으로 먹으로 물결무늬를 짙고 밝게 그리는 것을 말한다.

진반진문은 나무 필통 옆면의 물결무늬를 그리는 방식으로 수반수문보다는 짙게 나타낸다.

색채의 구성을 보면, 화면의 중심을 이루는 상단의 두 책갑이 위로부터 주색과 회색바탕이고 그 옆의 지통 안에 꽂혀 있는 두루마기가 청색과 녹색이며, 그 위를 가린 부채가 황색이다.

중심에는 주색과 청색의 목생화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위에는 지색, 아래에는 하색. 극색. 육색 등 간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정병모/돌베개 중에서]

 

 

평소 민화의 핵심은 ‘본그림’이고 ‘본그림’에는 완성될 그림의 조형정보가 60~80%이상 담겨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창작현장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구체적인 기록이나 그림으로 본 적은 없었다.

정병모 박사의 책을 읽다가 ‘책거리 초본’이라는 그림을 발견하곤 그 동안 주장했던 나의 이론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몇 자 적는다.

 

민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 결과 민화의 뿌리는 궁중회화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을 지은 정병모 박사는 민화와 궁중회화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그림’이라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논지를 옹호한다.

그러나 미술에서 민중에 의해 탄생하여 민중을 위한 민중화가의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 이론상의 개념일 뿐이다.

특히 이런 생각은 서구 좌파의 영향 때문인데 세상을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로만 규정하려는 오류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은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를 넘어선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대 말부터 20년간 이런 생각을 가지고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다.

궁중회화가 궁궐에 머물지 않고 양반이나 일반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된 것은 ‘본그림’이라는 독특한 조형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그림’은 그림을 그리기 전의 기본그림이다.

‘본그림’에는 구도, 사물의 형태, 채색방법 따위의 핵심조형방법이 담겨있다.

‘본그림’은 동양그림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조선에서는 공동체의 원리가 있었기 때문에 ‘본그림’이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었다.

이 ‘본그림’을 통하여 궁중회화가 백성들의 삶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에는 도화서, 차비대령화원 제도가 있었다.

도화서 화원도 그림을 내다 팔았다.

도화서에는 정식 도화서 화원 말고도 30여명의 생도가 있었다. 이 생도는 도화서에서 미술교육을 받는 예비 화원들이다.

그림을 배우는 방법은 본그림을 베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물감이나 종이, 비단 선별법, 화면 만드는 법, 붓질 사용법, 물감 섞는 법과 다루는 법, 미술이론, 화면 구성론 따위를 복합적이며 체계적으로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정식 화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정식 화원은 20~30% 정도 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파는 화공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그리는 그림의 바탕에는 도화서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한 ‘본그림’이 있었다.

도화서나 차비대령화원은 개인이 아니다.

집에는 수많은 문하생들이 있었다.

문하생들 중에는 도화서 화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아주 일부를 제외하곤 화원이 되지 못했다.

이들의 미술교육방법도 도화서 생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본그림’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다시 나름 정식교육을 받는 화공들도 자신의 그림을 도와줄 생도 내지는 견습생,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고 이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키우면서 수많은 화공이 만들어진다.

물론 화공과 제자를 연결시키는 구조는 미술교육과 본그림이었다.

이렇게 궁중회화와 멀어질수록, 정식미술교육과 멀어질수록 본그림에는 더 많은 변주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만약 ‘본그림’을 철저히 단속하고 봉인하였다면 민화의 유행과 발전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화의 전통은 그림의 형식이나 내용도 있지만 무엇보다 ‘본그림’의 개방성과 소통이다.

심규섭 
ynano@korea.com
http://art.misulban.com/yn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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