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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목 : 민화 속의 호랑이(3) - 호피도(虎皮圖)-호랑이는 죽어서 가죽그림을 남긴다.

민화 속이 호랑이(3)
호피도(虎皮圖)-호랑이는 죽어서 가죽그림을 남긴다.

 

민화에는 수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봉황, 용, 해태, 기린, 현무 따위와 같이 상상의 동물도 있고 호랑이, 학, 노루, 거북, 고양이, 개, 닭, 기러기, 원앙, 참새, 까치, 매미, 나비, 사마귀, 각종 물고기처럼 현실적인 동물도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시대와 나라마다 나름의 상징성을 갖는다.
상징은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전체 구성원들의 내용적, 정서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전통이 단절되고 여러 나라의 상징이 뒤섞여있는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생태적인 특징을 이용하여 민화 속의 동물을 해석하고자 하면 큰 오류를 낳는다.
민화 속의 동물이 가지는 상징은 생태와는 무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림만 보아서는 민화가 뜻하는 바를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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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도-점박이 호랑이 가족문양을 그린 그림이다. 사실성과 추상성이 결합되고 주술성과 장식성이 공존하는 수준 높은 민화이다. 비록 18세기에 그려졌지만 현 시대, 세계 어디에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민화에 나오는 동물의 상징은 다양한 형태로 해석해야 한다.
고양이를 그린 그림은 칠순잔치의 선물용으로 사용된다. 고양이의 한자음인 ‘묘(猫)’와 칠순을 뜻하는 ‘모(?)’가 중국에서 독음이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음이자(同音異字)를 이용한 상징은 아주 많이 사용된다.
또한 원앙새의 특징을 이용해 부부의 금슬을 표현하는 우의(寓意)방식이 있고,
고전적 문구나 일화를 그림 속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상징이 된 동물도 있다.
민화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이런 상징에 대해 혼란스럽거나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같은 전통과 역사를 공유한 우리 민족은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상징은 현실적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있고, 사용하지 않아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통 호랑이나 사자, 표범, 독수리 따위의 공격적이고 무서운 동물의 이미지는 전쟁이나 영웅의 용맹성을 드러내는데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의 전쟁영화나 포스터에 의한 반복적인 이미지 조작의 결과물이다.
이것도 서구의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약육강식’이라는 식민지 지배논리를 정당화 시키는 환영일 뿐이다.
우리 민족은 용맹성이나 전쟁영웅을 위해 이런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이용하지 않았다.
왕권을 상징하는 의장기에는 상상의 동물인 용이 들어가 있고, 각 군영의 의장기에도 ‘사신도’에 나오는 ‘주작’, ‘현무’, ‘청룡’, ‘백호’를 사용했다.
알다시피 ‘사신도’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은 우리 민족의 우주관이 반영되었을 뿐 공격성이나 용맹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했다.
아니, 모든 민족은 평화를 추구한다.
우리에게 있어 전쟁은 자연재해나 질병처럼 피하고 막아야할 어떤 악귀에 다름 아니다.
 
호랑이 그림은 전쟁영웅이나 용맹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재앙을 막아주는 벽사의 내용을 가진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나오는 호랑이는 용맹한 호랑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포악하거나 거칠지 않고 준수하고 똘똘한 느낌이다.
‘까치 호랑이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는 어리숙하고 꺼벙한 표정이고 심지어는 눈알이 뱅뱅 돌아가는 술 취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 어디에도 용맹한 전사의 이미지는 없다.

호랑이 가죽은 호랑이의 분신과 같다.
살아있는 호랑이를 곁에 두면서 소유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은 동물의 뿔이나 이빨, 가죽 따위를 집안이나 몸에 지니는 풍속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죽은 동물의 일부를 가짐으로써 그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주술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림은 권위와 주술, 교육, 장식과 같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오로지 부의 상징으로 거래될 뿐이지만.
아무튼 왕이나 귀족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이용하고, 예수와 석가모니를 그린 종교화는 그 자체로 경배의 대상이 된다. 이런 성인이나 토템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 집안이나 개인이 소유하면 일종의 벽사, 부적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그림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현실적인 가치를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로 변환시키거나 반대로 보이지 않는 대상이나 욕망, 생각을 눈에 보이도록 현실화시키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명작들은 대상을 너무 실감나게 그리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추상적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또한 상상과 현실의 적절한 결합은 미술조형 원리의 중요한 기본이 된다.

호랑이는 각종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호랑이 가죽을 직접 집안에 걸어두면 강력한 벽사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 여기지만 이것은 아주 낮은 단계의 문화이다.
실제 호랑이 가죽보다 더 강력한 벽사의 기능을 하려면 상상력이 결합된 그림이어야 한다.
어차피 벽사의 기능은 인간이 상상력이 만들어 낸 정신적 가치이기도 하고, 실제 현실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현실이 더 실감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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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장막도-호암미술관 소장
원래는 8폭 병풍그림이다. 보이지 않는 4폭은 모두 점박이 문양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호피도와 책거리 그림이 결합한 아주 고급스런 민화작품이다.
각종 서적과 골동품, 귀한 물건이 있는 양반집안의 서재를 호랑이 가죽이 감싸고 있는데 일부를 살짝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이 결합되어 안쪽 서재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호피도’는 호랑이 가죽을 펼쳐 놓은 형태로 그리는데 주로 병풍으로 꾸며서 집안을 장식한다.
그러니까 호피문양을 조금씩 다르면서도 반복적으로 4폭, 6폭, 8폭을 그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호랑이 얼굴부분은 그리지 않는다.
‘호피도’의 호랑이 가죽은 크게 ‘줄무늬 호랑이’와 ‘점박이 표범’의 문양으로 나눈다.
다른 말로 ‘참호랑이’, ‘개호랑이’ 가죽문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호피도’에는 점박이 표범가죽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나 백두산 근처에 표범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호랑이와 표범이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 민화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표범이 곧 호랑이이고, 호랑이가 곧 표범이다.
그런데도 점박이 표범 가죽을 많이 그린 것은 줄무늬보다는 점박이 문양이 아름답고 장식성이 높기 때문이다.
표범가죽 그림은 밝은 노란색이나 주황색 바탕에 검정으로 둥근 문양을 일정한 흐름에 따라 반복적으로 그린다. 세필로 꼼꼼하게 털의 느낌을 표현하고 강약을 조절하여 변화를 주었다.
반복된 둥근 문양은 시각적 중독을 일으키고 세밀한 털의 표현은 집중력을 높인다.
마치 표범가죽 문양을 이용한 최신 패션이나 가방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그려진 ‘호피도’는 양반 집안을 장식하고 혼례용 꽃가마의 지붕을 덮거나 이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런 특징으로 조선 말기의 중산층에게 큰 인기가 있었을 것인데 특히 정서상 무관 집안에 더욱 많이 걸렸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호랑이는 죽어서 호랑이 가죽그림을 남겼다.
외국에는 진짜 호랑이 가죽을 장식하거나 호랑이 그림을 그린 경우는 많이 있다.
하지만 호랑이 가죽문양을 그림으로 그린 것은 찾기 어렵다.
‘호피도’는 매력적인 민화이다.
사실성과 추상성의 결합을 통해 미술작품의 가치를 높였고 여기에 벽사, 주술적인 내용과 장식성, 대중성까지 획득하였다.
이 그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거부감 없이 통용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좋은 유산 중에 하나이다.

 

 

 

 


 

심규섭 
ynano@korea.com
http://art.misulban.com/yn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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